[잠망경] 우리는 왜 굿모닝을 외치는가
이른 아침, 병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느새 심리학 인턴으로 보이는 금발 여자가 옆에 서 있다. 나는 얼떨결에 ‘굿모닝’ 하며 소리친다. 그녀는 움찔하는 기색이다. 출근길은 험악한 날씨였다. 낯선 사람에게 하는 짧은 탄성, ‘Good morning!’은 상대에게 불특정적 호감을 전달하려는 예식이다. 웬만한 페북의 엄지척에 비하여 좀 무성의한 심리상태라 할 수 있다. 옥스퍼드 사전은 ‘good day’가 13세기 말, ‘good morning’이 15세기 중엽부터 쓰이기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불어 ‘bonjour’, 이탈리아어 ‘bonjourno’, 스페인어 ‘buenos dias’에서는 ‘아침’보다 ‘하루’가 압도적이다. ‘Have a good day!’는 백화점 점원이 계산을 다 마쳤을 때 손님에게 하는 말이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인사로 던지는 말 중에 ‘헬로’는 어떤가. 때는 바야흐로 1848년, 서부 시대 때 카우보이들이 시작한 ‘hello’는 ‘소리 지르다’라는 뜻의 ‘holler’와 말뿌리가 같다. ‘Give me a holler!’는 남부식 표현으로 전화를 걸어달라거나 소리쳐 알려달라는 뜻이다. ‘hello’는 20세기 이후 ‘hi’로 그리고 요즘 부쩍 자주 쓰이는 ‘hey’로 변천하는 중이다. 가장 정중한 인사말은 누가 뭐래도 ‘헬로’다. 미국에 전화가 발명된 직후에 전화 교환수를 ‘hello girls’라 불렀지. 맞다 맞다. 얼굴을 모르는 상대방에게는 정중한 언사가 최선이다. 우리가 낯선 사람에게 호감을 전하고 싶어하는 심층 심리는 무엇인가. 구글에게 물어본다. ‘말’로 소리 내는 굿모닝 말고, ‘텍스트’로 SNS에서 곧잘 쓰이는 ‘Good morning!’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이를테면, 아침마다 SNS를 통하여 남자가 여자에게 굿모닝! 하며 텍스트를 보내는 행동을 대부분 여자는 이성 간의 관심 표시로 치부한다는 식이다. ‘polite expression of interest, 점잖은 관심 표시’라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반대로 황당한 논리의 비약을 일으키는 소견도 서슴없이 나온다. 옛날에 할머니가 내 여동생들에게 “남자들은 다 개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가 굿모닝하고 소리쳤을 때 그 금발 여자가 움찔했던 것이 혹시 나를 개로 착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으하하. 아니지. 결코 아니다. 궂은 날씨에 평소보다 늦게 병원에 도착한 짜증스런 기분이 목소리에 묻어난 것이라는 추측이다. 나는 낯선 외국인으로서 그녀를 안심시켜 주기 위하여 별로 좋은 아침도 아닌 아침을 좋다고 했다. 내 호감 어린 빈말이 아니라 그녀의 불안감이 이슈였다.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를 감추려고 ‘small talk(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화제의 본질을 떠나서 시시껄렁한 사설을 늘어놓는 ‘bullshit, 헛소리’도 한다. ‘small talk’가 잘못 빠지면 ‘bullshit’이 되는 법이려니. 요즈음 한국을 뒤흔드는 헛소리에 빼어난 정치인 몇몇이 떠오른다. 라틴어에서 파생된 ‘polite’는 ‘polished(윤이 나는, 세련된)’와 어원이 같다. 성품이 빤빤하고 유들유들하다는 뜻의 ‘빤질빤질하다’는 말에 근접하는 의미다. SNS의 여자들이 남자에게서 굿모닝 텍스트를 받고 일으키는 반응 중에서 “점잖은 개가 부뚜막에” 올라가는 환상과 내가 무척 좋아하던 옛날 할머니 모습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굿모닝 굿모닝 텍스트 good morning bullshit 헛소리